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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한국 기업 다이소의 경쟁력, 일본 기업이라는 오명

by ahnsmile2024 2025. 1. 2.

지난 추석 다이소가 핫 아이템인 '달 항아리'를 상품으로 출시했습니다. 달항아리는 BTS의 RM이 소장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RM이 가진 달항아리의 가치는 수십억 원이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판매하는 기념품도 4만 원~7만 원 정도입니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이렇게 저렴한 가격 유지가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전국의 1440여 개 매장에서 연간 2조 9458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마어마한 구매 파워가 있는 것입니다. 이 매출은 전국에 1,700여 개 매장을 가진 스타벅스 코리아보다 높습니다. 심지어 영업이익은 2393억 원으로 전국에 16,000여 개의 매장이 있는 CU와 GS 편의점에 준하는 수준입니다. 게다가 불황을 정면으로 맞은 2023년 매출이 더 성장했습니다. 과연 천 원짜리 팔아서 어떻게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 다이소의 이야기 들려드리겠습니다.

 

 

다이소
다이소

 

일본 100엔 샵과의 거래 시작

다이소의 박정부 회장은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구로공단에 있는 전국 생산기업에 취직합니다. 워낙 성실해서 최연소 생산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1980년대 후반으로 산업 현장에서도 노동 운동과 파업이 빈번했습니다.

그가 있던 공장에서도 파업이 시작되었고, 생산 책임자였던 그에게 고난이 시작됐습니다. 결국 16년간의 회사 생활을 마치고 1988년 45의 나이로 퇴사합니다. 마침 동생이 일본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기업의 임직원들을 일본으로 연수를 보내주는 회사였습니다. 이때 박정부는 '한일 맨파워'라는 회사를 세우고 한국 기업의 영업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사업도 수요가 줄어들고 있었고, 마냥 동생에게 얹혀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직접 제품을 팔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은 판촉물부터 영업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작은 주문을 시작으로 거래를 트게 된 곳이 바로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100엔 샵이었습니다. 이렇게 사업을 한 지 1년쯤 되던 어느 날, 박정부 회장은 오사카에서 열린 100엔 샵 연합행사에 참여합니다. 여기서 일본 다이소의 창업자 야노 히로타케와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야노 회장은 박정부 회장의 꼼꼼함과 센스를 알아보고 납품을 받기 시작합니다. 야노 회장의 까다로운 기준을 맞추며 5년쯤 거래하던 어느 날, 박정부 회장의 물건을 독점 판매하고 싶었던 야노 회장은 앞으로 일본 다이소에 납품하는 제품을 다른 거래처에는 납품하지 말라는 요구를 합니다. 일본 다이소에 납품하는 물량 비중이 워낙 컸기 때문에 거절할 수도 없었습니다. 1년 뒤에는 다른 100엔 샵에는 일체 납품을 하지 말라는 요구까지 합니다.

 

 

일본 기업이라는 오명

그렇게 일본 다이소의 하청만 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한 박정부 회장은 그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사업을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그는 한국에 균일가 샵 '아스코이븐프라자'를 오픈했습니다.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1997년에 IMF 외환위기가 닥쳤습니다. 사람들은 저렴한 제품을 찾았고, 1,000원짜리 제품을 팔아서 일 매출 1,500만 원을 찍게 됩니다. 2001년에 100호점까지 돌파합니다. 이렇게 한국에서 시작한 사업이 승승장구했는데 왜 이름이 '아성 다이소'가 되었을까요? 이후에 박정부 회장이 쓴 책에 따르면, 과거 야노 회장이 독점 납품을 요구할 때 박정부 회장은 자신의 한국 사업에 투자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투자를 안 했지만, 2001년 '아스코이븐프라자'가 너무 잘되니까 일본 다이소가 투자를 합니다. 당시 4억 엔 한화로 39억을 투자받고 34%의 지분을 내줍니다. 그리고 이때 일본 다이소의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프랜차이즈도 아니었고, 운영에 간섭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완전히 별도의 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스코이븐 프라자'라는 이름을 사람들이 기억하기 어려워해서 '다이소'라는 발음하기도 쉬운 이름을 빌려 사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박정부 회장은 이때의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했습니다. 이 일로 사람들이 오랫동안 다이소를 일본 기업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된 건 2013년 다이소가 다케시마 후원 기업이라는 루머가 돌기 시작한 겁니다. 아성 다이소는 우리는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매장마다 안내문을 써 붙이기도 했지만, 대중은 계속 다이소가 일본 기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2019년 일본 불매 운동이 일어나자, 다이소는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고 계속해서 일본 기업이라는 오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이소의 경쟁력

처음에는 1,000원짜리 물건만 팔던 다이소. 2004년부터는 1,000원이라는 가격을 넘어 500원, 1,000원, 1,500원, 2,000원, 3,000원, 5,000까지 여섯 가지 가격을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저렴한 이 가격이 가능한 이유는 규모입니다. 전국에 많은 수량을 담보로 무조건 이 가격에 공급가를 맞추어 조달했습니다. 불필요한 포장과 디자인을 빼면서 가격을 맞추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계속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에 100개였던 다이소는 연간 20%씩 성장하였습니다. 현재 전국에 1500 여개의 매장에 하루에 100만 명의 고객이 다녀가고, 연 매출은 3조 원에 달하고 있습니다. 또 과거에는 주로 동네 상권에 입지 했지만, 2020년대부터 다이소는 주요 상권에 매장도 대형화하고 있습니다. 매장이 커지면 훨씬 더 많은 제품을 진열할 수 있고, 고객의 체류 시간도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취급하는 제품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유니클로처럼 여름에는 냉감 의류를, 또 겨울에는 플리스를 팔고 있습니다. 또 요즘은 화장품 업계의 큰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물론 다이소는 쿠팡과 같은 온라인 사업자들과 경쟁 경쟁해야 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이소는 가격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줄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의 가치도 제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이소의 미래도 밝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