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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PIXAR), 루카스 필름, 디즈니와 M&A

by ahnsmile2024 2025. 4. 13.

픽사는 작품을 제작하는 감독이 벽에 부딪쳤을 때 회의를 소집합니다. 픽사의 브레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입니다. 진행된 내용을 상영하고, 문제를 설명하면 치열한 피드백의 장이 열립니다. 참석자들은 적나라한 피드백을 던집니다. 누군가 즉흥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면, 그 옆에 누군가는 거기에 살을 붙여 의견을 냅니다. 또는 새로운 전환점도 제시해 주고, 그렇게 열심히 의견 교환이 끝나면 다들 쿨하게 자리를 떠납니다. 픽사의 브레인 트러스트 회의법입니다. 루카스 필름으로 시작해 디즈니와 M&A까지 이룬 픽사의 이야기 정리해 보겠습니다.

 

 

픽사
픽사

 

루카스 필름을 인수한 스티브 잡스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를 만든 감독 조지 루카스는 영화사 루카스 필름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할리우드 최고의 부자였지만 이혼 소송을 하느라 돈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래서 루카스 필름의 두 개 부서를 매각하기로 합니다. CG를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컴퓨터를 개발하는 부서와 CG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부서였습니다. 이때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는 계속 하드웨어를 만들고 싶어 했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하드웨어와 렌더링이나  3D소프트웨어에 눈독을 들였습니다. 또 이들이 만들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예술성과 기술성을 높이 평가했으나 사실 그것은 홍보 수단이고 하드웨어 판매로 돈을 벌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루카스 필름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를 운 좋게 돈을 많이 번 애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잡스에게 인수의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장편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픽사의 꿈을 지원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들을 인수했고 픽사(PIXAR)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스티브잡스는 회장이 되었고, 공학박사인 에드윈 캣멀이 CEO가 되었습니다. 루카스 필름부터 함께했던 그는 픽사에서 26년 동안 스티브 잡스와 같이 일하게 됩니다. 픽사는 계속해서 적자가 났지만 잡스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8년 동안 5천만 달러를 투자했는데 애플에서 나오면서 받은 돈의 절반이었습니다. 사실 잡스가 원했던 컴퓨터 사업은 큰 성공을 하지 못합니다. 너무 고스펙이고 비싸서 사람들은 어도비로 몰려갔습니다. 픽사의 고사양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수 있었던 건 디즈니 정도였습니다. 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 광고 그래픽 작업도 하고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 작업에도 참여했습니다.

 

픽사의 운명을 바꾼 토이스토리

픽사의 유일한 희망은 3D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였습니다. 픽사는 오랫동안 갖고 있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기획안을 들고 디즈니에 찾아갔습니다. 이에 수긍한 디즈니는 배급과 홍보 마케팅을 맡았습니다. 제작비는 절반씩 분담하기로 했습니다. 이때 픽사에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디즈니의 피드백에 의존했습니다. 디즈니는 유아동 콘텐츠의 탑이었기 때문에 픽사가 다른 길을 걷기를 바랐습니다. 토이 스토리의 시니컬함과 성인 유머에 가까운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디즈니의 피드백을 수용한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픽사는 작업 내용 전부를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토이 스토리가 완성되었습니다. 픽사는 아주 오랫동안 토이 스토리를 만들어 왔기 때문에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개봉 일정에 맞춰 주식 시장에 상장을 하기로 합니다. 토이스토리의 성적에 픽사의 운명이 달린 것입니다. 처음에 제작진들이 생각한 상장가는 12달러. 그러나 토이스토리는 개봉하자마자 대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주식 상장 첫날 마지막 거래가격은 39달러로 대박이 터졌습니다. 픽사의 애니메이션에는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해본 경험이 들어있습니다. 토이스토리는 이제 더 이상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을 이야기합니다. 코코에서는 사람이 진짜 죽는 때는 기억에서 잊히는 때라고 말합니다.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살고 있는 기본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다섯 감정에 대해서 말합니다.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현실적이지 않은 전개로 풀어내며 공감을 얻는 것이 픽사 작품의 특징이자 매력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기발하고 창의적일까요? CEO 에드 캣멀은 '각 영화를 추진하는 창의적인 비전은 회사 경영진이나 개발 부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창의적이고 훌륭한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에게 충분한 자원과 여유를 제공하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충분한 피드백을 받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창의력을 시스템화하는 픽사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는 천재 감독 한 명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반면, 픽사는 창의력을 시스템화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조직 측면에서도 임의로 '인큐베이션 팀'을 조직합니다. 인큐베이션 팀은 감독 한 명, 작가 한 명, 여러 명의 아티스트와 스토리보드 인력으로 구성되어 감독의 아이디어를 함께 디벨롭합니다. 물론 이들이 처음부터 합이 잘 맞는 건 아닙니다. 아이템 인큐베이션 과정을 통해서 구성원들이 서로 잘 어울리는지 살피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며 팀 내에서 좋은 조합을 찾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또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데 결정권은 감독과 제작자들에게 온전히 맡깁니다. 제작팀이 예산을 쓸 때도 매번 재무팀의 승인을 받는 게 아니라 제작팀이 알아서 집행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자원과 시스템이 철저히 창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픽사는 창의성뿐 아니라 기술 측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1985년 고수준의 사실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랜더링 소프트웨어 '렌더맨'을 만들었습니다. 1988년 '벅스 라이프'에서는 군중들이 모여있는 장면을 구현했고, 2001년 몬스터 주식회사에서는 털 한 올 한 올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또, 2003년 니모를 찾아서에서는 바닷속 질감까지 연출했습니다. 작품 속에서 구현하는 디테일들이 픽사에게는 한 작품, 한 작품이 의미 있는 기술 성취였던 것입니다. 픽사의 기술은 지금은 영화, 3D 애니메이션, VFX 가릴 것 없이 업계의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디즈니와의 M&A

토이스토리 뒤에 제작한 애니메이션 5편의 평균 실적은 2억 5천만 달러. 픽사의 몸값은 60억 달러까지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블록버스터 영화를 계속해서 제작하는 데 드는 재정적인 압박과 작품들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부담감도 매우 컸습니다. 한동안 디즈니와의 사이도 안 좋았습니다. 당시 디즈니의 CEO였던 마이클 아이스너와 배급 문제로 이견이 생겨 한동안 디즈니와 결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디즈니에 현재 CEO인 밥 아이거가 등장하면서 픽사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 와중에 디즈니와의 M&A가 테이블에 오르게 됐습니다. 픽사에서는 스티브잡스가, 디즈니 쪽에서는 대표 밥 아이거가 참여했습니다. 밥 아이거는 디즈니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픽사의 애니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을 통해 디즈니를 재건하고 싶었습니다. 밥 아이거는 스티브 잡스에게 애니메이션은 디즈니의 심장이자 영혼이며, 픽사가 디즈니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점을 어필합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려면 이 점은 지켜줘야 한다라고 강력하게 어필한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경영진이 제작 과정 즉, 캐릭터의 설정이나 스토리에 대해 전혀 간섭하지 않는 자유로움을 요구했습니다. 밥 아이거는 디즈니에 픽사의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을 도입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인수합병 절차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착착 맞아떨어졌습니다. 2006년 월트디즈니가 픽사를 74억 달러에 인수한다는 뉴스가 보도되었습니다. 디즈니의 기업가치는 이로써 더 높아졌고, 픽사의 주식 50%를 가진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 주식의 7%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인수 후 픽사의 매출도 점점 더 늘었을 뿐만 아니라, 합병 시너지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작품 제작 과정에서도 서로를 보완하기 시작했습니다. 디즈니는 원래 손으로 그리는 2D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지만, 트렌드를 따라가면서 전통적인 드로잉 애니메이션 제작을 중단했었습니다. 하지만, 픽사의 기술력으로 이를 다시 만들기 시작합니다. 제작에서 연필로 그림을 그려 스캔하고, 컴퓨터 그래픽이 필요한 이펙트 애니메이션은 디지털로 진행했습니다. 드로잉 애니메이션 스타일에 3D 컴퓨터 그래픽 요소를 더했습니다. 픽사의 디지털 기술력이 디즈니의 드로잉 애니메이션이 가진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 것입니다. 둘의 합체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디즈니의 캐릭터들은 더 생생해졌고, 픽사는 합병 후에도 월-E, UP, 토이스토리 3부터 최근에는 루카와 소울까지 픽사다운 영화를 계속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루카스 필름부터 스티브 잡스와 만나고 디즈니와 합병하는 순간까지 픽사의 회사 이야기 자체가 한 편의 영화 같습니다. 그러한 외부의 변화에도 픽사는 자신만의 DNA를 계속 유지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의 영역에서는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항상 선구자 역할을 해왔고, 소외된 캐릭터를 이야기하면서도 우리 모두를 공감시키는 창의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또 스티브 잡스를 매개로 애플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디지털 유통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픽사에서 제작되는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어른들이 봐도 참 행복하고 따뜻해집니다. 앞으로도 픽사가 오래도록 이런 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