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부터 폭스바겐은 디젤이 가솔린보다 더 친환경적이라는 클린 디젤을 광고해 왔습니다. 그런데 2015년 폭스바겐이 그동안 배출가스 양을 조작해 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전 세계 사람들의 뒤통수를 칩니다. 한 비영리 기구에서 미국산 디젤이 독일산 디젤보다 좋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데이터를 뽑아보니 폭스바겐이 발표한 데이터와 너무나 달랐고, 이렇게 우연히 세상에 진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이와 같은 희대의 스캔들로 폭스바겐의 주가는 반 토막이 났습니다. 다시는 회생이 불가능할 거라고도 했습니다. 이후 폭스바겐은 ESG 경영을 바탕으로 2040년까지 모든 신차를 수소 전기차로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또 전기차와 자율주행 등 미래기술연구에 99조 원을 투입하고 2025년까지 전기차 시장 1위가 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습니다. 폭스바겐은 과연 미래 전기차 시장에서도 또 한 번의 역전 드라마를 들 수 있을까요? 폭스바겐의 혁신과 미래전략, 탄소중립을 향한 행보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폭스바겐의 혁신 - 전기차 플랫폼
1970년대 폭스바겐은 전륜구동 해치백 폭스바겐 골프를 내면서 전 세계 자동차 최강자 반열을 올라섰습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디자인이었습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아우디, 람보르기니, 벤틀리, 부가티, 세아트, 포르셰 등을 잇따라 인수 합병하는 멀티 브랜드 전략을 통해 초대형 자동차 그룹으로 진화했습니다. 경차부터 최고급 세단, 스포츠카, 슈퍼카, 대형트럭까지 모든 종류의 차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폭스바겐은 몇십 년 동안 사랑받는 자동차 회사였습니다. 그래서 2015년 디젤 게이트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전 세계 소비자들의 배신감은 엄청났고, 재무 손실도 메머드급이었습니다. 벌금과 집단 소송 등의 수십 조 원이 들어갔습니다. 폭스바겐은 이를 계기로 큰 변화를 추구합니다. 위기 돌파해 승부수로 전기차와 자율주행 카드를 꺼냈습니다. 기술에 수억 달러를 투자하며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혁신에 돌입했습니다. 폭스바겐 경영진은 '우리는 디젤 위기가 아니었다면 전기차 플랫폼을 만들지 않았을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디젤 게이트를 계기로 환골탈태한 것입니다. 병폐로 지적되었던 기업 문화도 전면 손질했습니다. 수직적이고 배타적이었던 기업 문화를 수평 구조로 바꾸고 방대했던 조직도 간소화했는데요. 이런 일련의 혁신 노력으로 전 세계 2위 완성차 업체 자리를 빠르게 회복하고 테슬라와 함께 전기차 2강 체제를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폭스바겐의 미래전략
폭스바겐이 내세운 미래 전략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전기차 전용 통합 플랫폼의 개발입니다. 폭스바겐은 글로벌 자동차 그룹 중에서는 유일하게 4종의 전기차 플랫폼을 개발한 기술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는 차세대 전기차 통합 플랫폼 SSP를 만들고 있습니다. 폭스바겐 산하 12개 브랜드에서 공유함으로써 개발과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전기차 플랫폼과 대량 생산 능력을 갖춘 폭스바겐이 테슬라와의 경쟁에서 유리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둘째, 배터리 역량 확보입니다. 2030년까지 폭스바겐 그룹 내 전기차 80%에 통합배터리 셀을 장착해서 배터리비용을 50%까지 절감하겠다는 것입니다. 2030년까지 유럽의 6곳에 기가 팩토리를 구축할 예정입니다. 스웨덴에 자리한 첫 번째 기가팩토리는 스웨덴 배터리 기업 '노스볼트'가 운영을 맡았습니다. 독일에서는 중국의 셀 전문 기업인 '궈시안 하이테크와' 함께 통합셀을 함께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많은 자동차 업체들이 배터리 자체개발을 선언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전기차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용이 40%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또 배터리 업체들을 압박하기 위한 노림수도 숨어있습니다. 공급 업체와의 가격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폭스바겐의 청사진이 계획대로 이루어질지는 의문입니다. 폭스바겐이 손잡은 노스볼트는 10년 미만의 신생 기업입니다. 선도기업의 경우를 보면 배터리 개발과 대량생산을 하기까지는 수십 년이 필요합니다. 신생 회사와의 협력에서 원하는 성과를 얻을지는 미지수였습니다. 얼마 전 노스볼트는 결국 파산 소식을 전했고, 폭스바겐 그룹의 산하 계열사가 노스볼트의 일부 사업을 인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폭스바겐은 이전부터 우리나라의 배터리 3사와도 협력할 여지를 남겨뒀고, 2024년 국내에서 판매하는 전기차는 모두 한국산 배터리를 장착한다고 공개했습니다. 결국 미래 전기차 배터리의 승자는 꿈의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를 내놓는 기업이 되지 않을까요? 현재로선 도요다가 가장 앞선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기업들도 빠르게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내놓기를 기대해 봅니다. 셋째, 자체 소프트웨어 개발과 자율주행 서비스입니다. 폭스바겐은 자회사인 카리아드를 통해서 자체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2025년까지 모든 그룹의 차량에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고객들의 경험과 피드백을 축적함으로써 데이터 기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려는 것입니다. 이 전략은 테슬라가 차량용 반도체를 직접 개발하고 애들 역시 반도체를 직접 개발하는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배터리는 물론이고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수직 계열화를 통해서 자신들의 독자 생태계를 굳건히 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자율주행 셔틀 기반의 이동 서비스와 금융서비스도 확대할 예정입니다. 모빌리티 그룹으로 가려는 빅픽처인 것입니다. 하지만 테슬라의 벽을 넘기가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테슬라의 경우 주행기록 누적량이 압도적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트레이딩 애널로시스의 설립자는 결국 데이터가 가장 많은 쪽이 승리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폭스바겐이 테슬라에 필적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습니다. 결국 데이터 전쟁을 벌이는 중인 것입니다. 이 밖에도 폭스바겐은 충전 인프라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2025년까지 유럽 내의 현재 5배에 달하는 공공고속충전기를 운영하고 미국과 중국에서도 확대할 예정입니다. 폭스바겐은 2020년 연말 전기차 충전 로봇의 콘셉트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차를 주차한 후 배터리 충전을 요청하면 로봇이 모바일 배터리를 들고 직접 차량으로 이동해서 충전을 해주는 형태입니다. 지금 전기차는 충전 문제가 큰 불편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 콘셉트 영상처럼 충전 로봇이 상용화된다면 폭스바겐의 미래 경쟁력도 상당히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폭스바겐 탄소중립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탄소중립을 향한 폭스바겐의 적극적인 행보입니다. 2021년 4월 우리나라에서 goTOzero라는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폭스바겐 자동차 전체에서 나오는 온실가스가 전 세계 10위에 달한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탈탄소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독일 츠비카우 공장은 자체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고, 그린 전기를 이용해서 연 33만 대 전기차를 생산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또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통해 탄소 저감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한 환경단체는 유럽에서 모범적으로 탈탄소, 전기차 전환을 추진 중인 완성차 업체는 폭스바겐과 볼보뿐이라고 전했습니다. 물론 전 세계적인 환경규제와 탄소세 부담을 덜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크겠지만, 디젤 게이트의 불명예를 씻고, 탈탄소 모범생으로 전환한 폭스바겐이 매우 기대가 됩니다. 전기차 시대에는 누가 최종 승자가 될까요? 결국은 소비자에게 가장 어필하는 기업이 선봉에 설 것입니다. 환경과 사회를 생각하는 착한 기업, ESG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폭스바겐이 디젤 게이트에서 얻은 교훈과 초심을 앞으로도 유지한다면, 미래 전기차 시대에도 그 명성은 지속 가능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