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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어묵 박용준 회장, 삼진어묵 베이커리

by ahnsmile2024 2025. 2. 14.

삼진어묵은 부산에서 3대째 사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삼진어묵의 창업과 위기, 참신한 커머스의 진입, 어묵 베이커리 등을 소개합니다.

 

 

삼진어묵
삼진어묵

 

삼진어묵의 창업주 박재덕

삼진어묵의 창업주 박재덕은 1940년대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었다가 일본에서 해방을 맞게 되었습니다. 홋카이도에서 일할 때 어깨 너머로 배운 어묵 기술을 이용해 부산에서 어묵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부산으로 피난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어묵이 전쟁으로 인한 식량 부족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어묵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어묵 공장이 곳곳에 생겨났습니다. 어묵은 밀가루 함량이 높아지면 탄력이 없고, 맛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영양가가가 높지 않았습니다. 박재덕의 삼진어묵은 처음부터 75% 이상으로 높은 어육 함량을 유지했습니다. 삼진어묵은 항상 좋은 재료를 고수했습니다. 1950년대에는 어묵을 맷돌에 뼈째 갈아서 기름솥에 튀기는 방식이었습니다. 고급 어묵은 식용유로 튀겨 시내 식당에 배달했고, 저렴한 어묵도 고래기름이나 전갱이기름으로 튀겼습니다. 그리고 밀가루가 비싸기 때문에 콩비지를 섞었습니다. 하지만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외식업이 성장하면서 어묵의 품질이 향상되었고 어묵은 국민 반찬으로 사랑받았습니다. 어묵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부산에는 어묵 공장이 많이 생기고 시설이 자동화되고 대형화되었습니다. 삼진어묵은 창업자 박재덕이 30년간 운영하고 이후 그의 아들인 박종수가 사업을 이어갔습니다. 박종수는 생산 및 포장 시설을 구축하고 브랜드명을 부산어묵으로 변경해 2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규모로 키웠습니다. 좋은 어묵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30년 동안 쉬지 않고 매일 새벽 4시에 출근하는 등 일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었습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새로운 음식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어묵의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식품 불만 프로그램에서 일부 불량 어묵 공장을 고발하면서 어묵이 불량 생선으로 비위생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습니다. 결국 소비자들은 점차 백화점과 마트로 이동했고 어묵 시장은 대기업이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삼진어묵의 젊은 CEO 박용준 회장

어묵 업계와 회사가 이렇게 어려워지자 3대가 등장했는데, 바로 창업주 박재덕의 손자인 박용준 현 삼진어묵 회장이었습니다. 삼진어묵을 키운 젊은 CEO로 유명한 박용준은 원래 가업을 절대 물려받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박용준은 어릴적 학교를 마치면 매일 어묵 공장에 가서 기계에 박힌 찌꺼기를 청소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학창 시절 별명이 어묵이었는데, 부모님이 힘들게 일하시는 것을 보고 어묵 공장을 물려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회사원이 되고 싶어서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뉴욕주립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회계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던 중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회사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는 어쩔수 없이 한국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받았습니다. 박용준이 막상 회사에 들어와보니 상황은 더 나빴습니다. 20여 명의 직원이 과거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었고, 부채도 많았습니다. 그는 장부와 회계를 체계화하고 위생에 신경 썼습니다. 공장에 들어가기 위해 위생복을 입고 소독하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일한 직원들은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영업이 우선"이라며 등을 밀었습니다

 

소셜커머스 진출

박용준은 납품 거래처를 한 군데라도 더 만들기 서울의 도매업체를 찾아다녔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이때 '소셜 커머스'가 그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당시 할인 쿠폰을 판매하는 소셜 커머스가 서로 경쟁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용준은 새로운 어묵을 선보이고 싶다는 제안서를 소셜 커머스 회사에 보냈습니다. 발렌타인데이를 앞두고 어묵 초콜릿을 개발해 소셜 커머스 회사에 소개했습니다. 소셜 커머스는 수수료를 15% 넘게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큰 수익을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만에 2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3만 명의 웹사이트 회원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삼진어묵의 연간 매출은 20억 원이었는데 소셜 커머스에서 판매한 2억원은 매우 큰 금액이었습니다. 마진은 적었지만 삼진어묵이 알려지면서 매출은 전년 대비 두 배로 증가했습니다. 박 대표의 젊은 정신과 아이디어가 변화를 일으킨것입니다. 그때부터 삼진어묵은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합니다. 지금까지 어묵은 맛과 모양이 같아서 독특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박용준은 과감하게 부산어묵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회사 이름을 딴 삼진어묵으로 제품명을 바꾸고 디자인도 깔끔하게 바꿨습니다. 또한 기존 어묵을 납품하던 도매상보다는 일반 고객을 중심으로 영업 전략을 변경했습니다. 처음에는 부산의 4개 전통시장에서 직접 영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전통시장에는 비싸고 좋은 어묵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삼진어묵 베이커리

그래서 새로운 유통 채널을 공략하기 시작합니다. 추석에는 선물 세트를 만들어 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그리고 오프라인 매장을 만들어 반찬으로 인정받던 어묵을 프리미엄 간식으로 만들려는 색다른 시도를 선보입니다. 2013년에 어묵가게를 빵집처럼 만들어 삼진어묵 베이커리를 오픈했습니다. 갓 튀긴 어묵을 베이커리처럼 바구니에 담아 자리에서 먹거나 포장해 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위생적인 조리 과정을 보여주는 오픈 키친을 만들어 신선한 어묵을 시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때 어육의 비율을 90%까지 끌어올려 신제품을 개발했습니다. 고추어묵 튀김, 새우말이 어묵, 단호박 어묵 등 30여 종의 어묵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감자, 고구마, 카레, 고추의 네 가지 맛 어묵 크로켓은 삼진어묵의 시그니처 상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편안한 유럽식 베이커리로 인테리어가 바뀌었습니다. 이후 삼진어묵의 매출은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서울은 물론 부산에서 열린 삼진어묵 특별전에서는 4만 5천여 명이 20일 동안 줄을 섰습니다. 지금 삼진어묵 매장은 삼진어묵당이라는 브랜드로 약 20개의 분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많은 실패가 있었습니다. 독특한 메뉴를 만들어 냈지만 수없이 사라졌습니다. 또 어묵 프랜차이즈를 여러 개 만들었지만 대중들의 반응이 없어 문을 닫았습니다. 또 사고도 있었습니다. 한 백화점에서 물에 상한 어묵을 씻어서 판매하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를 계기로 박용준 대표는 직접 사과하고 식품 안전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이러한 위기와 변화에 대해 박 대표는 혁신을 위해 많은 것을 바꿨지만, 어묵의 본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삼진어묵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삼진어묵 베이커리를 처음 오픈한 2013년 83억 원, 2023년 830억 원으로 10년 만에 매출이 10배 증가했고, 지금도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삼진어묵은 10년 만에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박용준 대표이사는 시대가 변하더라도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면서 회사의 본질을 잃지 않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러한 철학이 오랫동안 이어져 삼진어묵에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100년 기업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