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서울에 블루보틀 성수점이 오픈하자 사람들이 긴 줄을 섰습니다. 왜 다른 나라보다 먼저 한국에 입점했냐고 설립자 제임스 프리먼에게 질문하니 블루보틀 홈페이지에 방문하는 한국인이 정말 많았다고 합니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부터 SNS에서는 블루보틀이 이미 화제였던 것입니다. 한국에 스타벅스도 매장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도대체 블루보틀 커피 브랜드가 뭐가 특별해서 그렇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까요? 커피시장 3의 물결을 만든 블루보틀 커피의 특별함과 스프린트 방법론, 네슬레의 인수 등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커피를 진심으로 대한 제임스 프리먼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제임스 프리먼은 오디션을 보러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녔지만, 음악가로서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음악을 포기하고 음악 스타트업 회사에 취직했는데 거기서도 곧 해고당합니다. 그런 프리먼이 진심을 다했던 것은 바로 커피 내리는 일이었습니다. 출장을 가기 전에 원두를 직접 볶고, 드리퍼를 가지고 다니며 비행기에서 뜨거운 물을 달라고 해서 커피를 직접 내려 마셨습니다. 2002년 백수가 된 프리먼은 직접 창업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해고당한 직후라 돈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어느 레스토랑 창고를 빌립니다. 거기서 로스팅 기기로 원두를 볶아서 카페에 납품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트럭에 원두와 핸드 드립 도구를 싣고 파머스 마켓에 나가서 커피를 팔았습니다. 핸드 드립 한 잔을 내리려면 10분이 걸리는데도 사람들은 프리먼의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결국 프리먼은 1년 뒤 오클랜드에 블루보틀 첫 번째 매장을 오픈합니다.
블루보틀 커피의 특별함
초기의 블루보틀에는 몇 가지 특별함이 있었습니다. 먼저, 8가지의 간결한 메뉴입니다. 스타벅스의 음료 메뉴는 정말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블루보틀은 드립커피,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카페라테, 카페모카, 마끼아또, 뉴올리언스 커피, 핫초코 단 8가지만 제공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로 통일된 컵 사이즈입니다. 스타벅스에는 숏, 톨, 그란데, 벤티 사이즈까지 다양합니다. 하지만 블루보틀에는 한 가지 사이즈의 컵만 있습니다. 커피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용기의 사이즈와 물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의 물을 넣는데 온도도 0.1도 단위로 조정했습니다. 블루보틀은 아주 초정밀한 매뉴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프리먼의 섬세함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꼭 한 잔씩 내린 핸드 드립 커피를 고수했습니다. 블루보틀은 미국에서 출발했지만, 아메리카노를 팔지 않았습니다. 커피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핸드 드립으로 내린 커피만 판매했습니다. 핸드 드립은 원두도 2배가 들어갑니다. 그리고 커피를 내리는데 10분간 도구를 붙잡고 있어야 하고, 매번 드리퍼와 보틀도 씻어야 하니 정말 번거롭습니다. 하지만 커피의 참맛을 위해 수고로움도 감수했습니다. 게다가 모든 우유음료에는 라테 아트를 제공합니다. 오래 걸려도 정성 가득한 커피만 제공하겠다는 고집이 느껴집니다.
구글과 함께한 스프린트 방법론
그런데 커피 한 잔을 내리는데 10분씩 걸리고, 라떼 아트도 해주려면 인건비가 유지될까요? 이렇게 해서 스타벅스를 이길 수 있을까요? 만약 프리먼이 그저 커피를 좋아하는 마니아였다면 로컬 카페 몇 군데 오픈하고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클랜드는 실리콘밸리 옆 동네였습니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또 블루보틀 커피를 사랑했습니다. 프리먼은 초기에 구글 벤처스에서 2천만 달러를 투자받게 됩니다. 구글과 함께 '스프린트 방법론'으로 블루보틀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험을 시작합니다. 그때까지 블루보틀의 주 수입원은 원두 납품이었습니다. 아무리 블루보틀의 원두가 좋다고 해도 가게마다 원두 관리부터 커피를 내리는 것까지 너무 변수가 많아서 일관된 맛과 경험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블루보틀은 과감하게 돈이 되는 B2B 원두 사업을 포기하고 고객에게 원두를 배달하기로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설과 테스트, 피드백 반영을 거듭하는 스프린트를 돌립니다. 고객들이 커피를 내려마실 때 추출도구에 따라 원두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프리먼이 강조하는 '고객을 환대하는 경험'이 더해지면서 블루보틀의 커피 구독사업인 '블루보틀 앳 홈'을 출시합니다. 또 커피와 관련된 매력적인 MD 상품도 제작하는데 가격이 비싼데도 잘 팔렸습니다. 좋은 커피를 만든다는 사업의 본질에 맞게 머그컵, 드리퍼부터 여행용 커피 도구 세트까지 커피에 관련된 용품을 제작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블루보틀 매장은 카페라기보다 브랜드를 경험하는 플래그샵인 셈입니다. 애플스토어가 제품의 판매보다는 경험을 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알리는 거점으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블루보틀 매장에 가면 와이파이도 없고 콘센트도 없고 의자도 아주 적습니다. 맛있는 커피를 맛보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를 제거했기 때문입니다. 또 새하얀 벽면에 단순한 매장 인테리어는 인증샷을 찍어 올리는 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사진 어디엔가 작게 보이는 파란 병 로고는 내가 지금 핫한 공간에 와 있음을 알려줍니다. 사실 이 모두가 구글벤처스의 투자를 받으면서 함께 구상한 온라인 전략의 결과였습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과 함께 성장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로고도 그냥 푸른 병에 붉은 글씨로 브랜드명이 크게 적힌 평범한 형태였습니다. 이를 전문 디자이너들의 도움을 얻어 인증샷 찍기 좋은 심플함으로 바꾸고 인스타그램업을 한 디자인과 공간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커피시장 제3의 물결
무엇보다 블루보틀이 중요한 이유는 커피 시장에 제3의 물결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커피 시장 제1의 물결은 인스턴트커피의 등장이었습니다. 커피 믹스를 만들던 네슬레가 1위를 하는 시장이었습니다. 제2의 물결은 샌프란시스코의 피치커피가 주도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추출한 커피였습니다. 스타벅스가 최고의 기업으로 떠올랐고 수많은 커피 전문점이 생겼습니다. 제3의 물결은 블루보틀과 인텔리젠시아, 트럼프타운이라는 브랜드가 이끌고 있는 스페셜티 커피입니다. 스페셜티 커피란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에서 80점 이상 받은 우수한 등급의 커피입니다. 지리나 기후가 특수한 곳에서 자라고 재배가 친환경적으로 이루어진 커피 농가에게만 주어지는 등급입니다. 여러 원두를 블렌딩 한 커피가 아니라 한 품종이 가진 고유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싱글 오리진 커피를 주로 씁니다. 이 과정에서 커피 산지의 특성과 무역 거래 방식, 품질을 중요하게 여기는 슬로 푸드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바로 커피가 가치 소비의 시대로 접어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와인 시장에 비유하면서 한 번 높아진 커피 입맛을 바꾸기 어려울 거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스타벅스 역시 2008년부터 이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스타벅스 리저브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스페셜티 커피에서 블루보틀을 따라오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블루보틀을 인수한 네슬레
2017년 커피시장 제1의 물결의 주역이었던 네슬라가 제3의 물결인 블루보틀을 인수합니다. 커피 마니아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더 이상 블루보틀을 마시지 않겠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던 독립 로스터가 자본에 무너졌다.' 이런 악플들이 달렸습니다. 프리먼은 도대체 왜 이런 결정을 한 걸까요? 사실 블루보틀은 40여 개의 지점을 내고 유명해지기까지 10년간 아주 천천히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1400억 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을 위해서는 상장이나 인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한편, 네슬레는 여전히 시장 1위로 다 가지고 있었지만 프리미엄 브랜드는 없었기 때문에 블루보트를 인수하고 싶어 했습니다. 네슬레의 CEO 울프 마크 슈나이더가 당시 블루보틀의 CEO 브라이언 미한에게 만나자고 제의했습니다. 그때 블루보틀은 별로 네슬레에 인수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슈나이더는 스위스 풍경 좋은 네슬레 본사에 데리고 가서 블루보틀의 정체성을 온전히 지켜준다고 약속했습니다. 온갖 노력을 들여 끝내 설득한 것입니다. 인수 후 현재는 전 세계 108개 매장으로 늘어났고 한국에도 9개 매장이 생겼으니 결국에는 자본의 힘으로 그동안과는 다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네슬레가 가지고 있는 완성품 음료 형태 즉 RTD(Ready To Drink)를 만들거나, 네스프레소를 통해 블루보틀 캡슐 같은 사업으로 확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렇게 확장을 하면서도 블루보틀이 창업 초기부터 사수해 온 가치와 커피의 맛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벌써 초기의 블루보틀 전략도 정말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확실히 블루보틀은 대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블루보틀을 알고 나서 거리를 보니 많은 카페가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습니다. 앞으로 블루보틀과 커피 시장이 어떻게 변해나갈지 흥미진진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