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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계의 에르메스 바샤커피, 모로코 사치의 극장

by ahnsmile2024 2024. 12. 31.

2024년 8월 1일 바샤커피 국내 1호 매장이 오픈했습니다. 가장 비싼 '브라질 파라이소 골드'가 350ml가 48만 원이고, 일반적인 커피 한 잔은 매장 이용 시 16,000원, 테이크아웃은 11,000원 정도로 일반 커피보다 훨씬 비쌉니다. 한국의 커피 소비량은 세계인의 두 배 수준이라고 합니다. 2022년 기준 국내 커피 브랜드는 852개입니다. 이렇게 많은 커피의 나라에서 바샤커피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샤커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바샤커피
바샤커피

 

차(Tea) 덕후들의 TWG 오픈

바샤커피를 만든 사람은 1969년 모로코에서 태어난 타하 북딥입니다. 아버지는 모로코왕의 경호 총책임자였고 어머니도 대사관에서 근무했습니다. 보통 경호 일은 가업을 잇습니다. 북딥도 영국의 왕실 군사학교에서 훈련도 받고, 국제법을 전공하면서 다른 형제들처럼 왕실 경호원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23살에 잠시 일 할 생각으로 친구로부터 프랑스의 차(Tea) 회사를 소개받습니다. 이곳에서 북딥은 차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됩니다. 북딥은 19년간 이 회사를 다니면서 휴가 때는 자비로 인도나 일본의 차 농장을 방문할 만큼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러던 2004년 페르시안 티하우스에서 같은 '차(Tea) 덕후' 무르자니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둘은 차(Tea) 산업을 어떻게 앞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합니다. 2007년 무르자니는 자기가 살고 있는 싱가포르에 북딥을 초대했고, 북딥과 무르자니는 첫 가게 TWG를 싱가포르에 엽니다. 그런데 규모가 작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3개의 공장, 한 개의 센트럴 키친을 열었습니다. 북딥도 20년간 차(Tea) 산업에서의 경력이 있었지만, 직원들 모두 차 산업이나 디저트, 고급 레스토랑에 오래 종사해 온 최고 베테랑으로 구성했습니다. TWG를 처음 오픈한 2008년은 금융위기였지만, 첫해부터 650톤의 차(Tea)를 판매면서 대박을 냅니다. TWG는 처음부터 '합리적인 명품'을 지향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져 명품 가방은 구매하지 않아도, 고급 티백을 마시며 작은 사치를 누릴 수는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36개국에서 가져온 가장 품질이 좋은 다양한 싱글 오리진 Tea를 확보했으며, 여기에도 가향티를 만듭니다. 시나몬, 오렌지, 초콜릿을 어떻게 차와 블렌딩 할 수 있을까 연구하면서 800종이 넘는 블랜딩을 선보였습니다.

 

TWG와 트와이닝(Twinning)

TWG는 'The Wellness Group'의 약자이고, 키 컬러는 중국 황제가 즐겨 사용한 노란색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TWG는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티백으로 한 번쯤 마셔봤을 영국의 홍차 브랜드 트와이닝(Twinning)과 유사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트와이닝은 영국에서 '얼그레이'를 처음 개발한 317년의 역사를 가진 브랜드입니다. 얼그레이는 그레이 백작이라는 뜻으로 중국 최고급 홍차인 '정산소종'의 맛을 잊지 못한 그레이백 제작을 위해 베르가못 향을 첨가해서 만들어진 차입니다.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면서 영국 황실에 납품하도록 정식으로 마크를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1837년인 것도 참 공교롭습니다. TWG의 로고에는 1837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싱가포르의 상공회의소 설립 연도입니다. 동서양 차 무역의 중심지였던 싱가포르는 상공회의소 설립을 기점으로 차를 유통하기 시작합니다. 차를 판매한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의미로 숫자를 기입한 것이지만, 사실은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한 숫자 마케팅이었던 것입니다. 어찌 됐든 TWG는 승승장구했습니다. 트와이닝보다도 품질이 좋은 차를 취급했고, 패키지도 더 고급스러웠으며 그만큼 가격도 더 높았습니다. 이후 6년간 14개국에 매장을 오픈하면서 매출은 계속 높아졌습니다.

 

사치의 극장 바샤커피

2017년 북딥은 모로코의 도시 마라케시에서 열리는 박물관 개관식에 초대받습니다. 이곳은 과거 마라케시 총독의 궁전이었던 '다르 엘 바샤(Dar el Bacha) 팰리스'였습니다. 1910년 정부 관청 바로 옆에 지어진 커피 하우스로 찰리 채플린, 윈스턴 처칠 같은 유명 인사들이 모이곤 했습니다. 이는 술을 먹지 않는 이슬람 문화도 관련이 있습니다. 술 대신 커피를 마시며 정치나 철학을 논했던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르엘 바샤는 60년간 폐쇄되어 있다가 국립박물관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그리고 박물관에서는 이미 TWG로 성공한 북딥에게 이 안에 카페를 열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합니다. '다르 엘 바샤'에 반한 북딥은 모로코의 전통 중정인 리아드를 잘 살려 카페를 만들었고 브랜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2019년 바샤커피가 박물관 내에 개장하게 됐고, 이를 모티브로 하여 싱가포르에 브랜드를 전개해 나간 것입니다. 바샤커피의 매장에는 모로코 궁전에 초대된 듯한 타일과 인테리어가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식기가 제공됩니다. 손님이 얼마짜리 메뉴를 주문하든 극진하게 화려한 패키지와 고품질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한국에 오픈한 바샤 매장에서도 앉은자리에서 손을 들어 서버를 부르고, 커피에 대해 자세히 묻고 주문할 수 있습니다. 또 부족한 커피는 서버가 옆에서 따라주고, 앉은자리에서 계산까지 이루어집니다. 모든 것을 셀프로 해야 하는 최근의 카페 프랜차이즈와는 완전히 다른 경험입니다.. 북딥은 바샤커피가 경험적 브랜드라고 말합니다. 일상적인 상품을 새로운 경험으로 서비스하는 것이 중점이며 사치의 극장이라고 표현합니다. 마치 1910년대에 모로코 중정에 초대받은 귀빈과 그를 모시는 서버로 한 편의 연극 같은 인상을 주는 것 입니다.

 

다양한 종류의 바샤커피

바샤커피는 본사가 있는 싱가포르나 바샤커피 매장이 있는 나라에 여행을 갈 때 쇼핑리스트로 유명했습니다. 특히 초콜릿이나 과일 향을 첨가한 '가향커피'가 인기가 많습니다. 시그니처인 '1910 블렌딩'은 무려 딸기향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초콜릿이나 빵과 어울리는 '밀라노 모닝' 커피가 가장 인기 있다고 합니다. 바샤커피에는 가향커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향커피는 패키지 상단에 'Find Flavored'라고 쓰여 있습니다. 70종의 가향커피 외에도 206종의 다양한 커피를 구비하고 있습니다. 한편, 바샤커피를 한국에 들여온 롯데백화점도 화제입니다. 정준호 대표가 직접 싱가포르를 오가며 공들여 가져왔다고 하는데요. 롯데의 계열사는 엔제리너스 커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백화점이 백화점 내 매장이 아닌 청담동에 단독 매장을 내면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샤커피의 흥행이 아직 대세라고 보기는 이릅니다. 싱가포르의 창이공항에 있는 바샤커피에도 한국인들만 북적거린다고 합니다.

 

커피계의 에르메스라고 불리는 바샤커피가 정말 세계의 커피 트렌드에 의미 있는 영향을 줄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스토리텔링과 경험 마케팅으로 소기의 성과를 일궈낸 바샤커피는 분명 배울 점이 있어 보입니다. 우리가 어떤 브랜드에 돈을 지불하는지, 어떤 경험에 기꺼이 큰돈을 지불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