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 태권도 종목 금메달리스트 박태준 선수는 매일유업에서 격려금과 4년 분량의 단백질 보충제를 후원받게 되어 관심을 모았습니다. 매일유업은 박태준 선수의 아버지가 20년 동안 근무를 했고, 그가 어릴 적부터 매일유업의 우유를 먹고 자랐다고 밝혀 더 화제가 되었습니다. 55년째 한국의 우유업계를 이끌어 온 매일유업의 창업주 김복용 회장이 특수 분유를 생산하게 된 계기와 상하목장 설립, 폴 바셋과의 협업 등 다양한 사업을 소개합니다.
매일유업의 창업주 김복용 회장
6.25 전쟁 당시 홀로 월남을 한 김복용 회장은 을지로 방산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특유의 성실함과 신용을 바탕으로 제분업과 무역업까지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1971년 정부는 5개년 경제개발 계획으로 낙농업을 부흥시켰습니다. 이때 김복용 회장은 우유가 국민의 건강을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고, 고품질의 우유를 생산과 대중화를 목표로 낙농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동안 모은 자본금으로 정부와 50대 50으로 투자해 '한국 낙농 가공 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에는 젖소가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낙농업체는 뉴질랜드에서 임신한 젖소를 배로 들여왔는데, 한 달 반 동안 배로 오는 도중 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는 젖소를 비행기로 운송하기로 결심하고, 대한항공에 도움을 요청해 건강한 젖소를 하루 만에 국내에 들여올 수 있었습니다. 3년간 5천여 마리의 젖소를 국내로 들여와서 고품질 우유를 생산했지만, 냉장 시설이 부족하여 신선하게 유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물에 타면 우유가 되는 전지분유를 선보였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멸균우유도 개발했습니다. 그러다 냉장 시설이 보급되면서 신선한 생우유를 보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선한 우유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회사 이름을 '매일유업'으로 변경했습니다. 매일유업에는 우유 외에도 다양한 제품이 많습니다. 과일 맛 음료 '피크닉, 요구르트 '비피더스', 떠먹는 요구르트 '바이오거트', 허쉬 초콜릿 드링크, 썬업, 분유 '앱솔루트', 편의점에서 처음 선보인 커피 '카페라테'도 매일유업의 제품입니다.
특수분유 생산
평소 매우 검소했던 김복용 회장도 검소하게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그는 "사옥을 짓거나 살 돈이 있으면 공장을 하나 더 지겠다"며 전국에 우유 공장과 창고를 늘리며 신선한 우유를 유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매출이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이렇게 검소하게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김복용 회장이 수익이 없어도 오랫동안 열심히 노력해 온 사업이 있습니다. 바로 특수 분유 생산 사업입니다. 김복용 회장은 병원에서 선천성 대사 이상을 가진 아동을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이 질병은 인구 100만 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 질환으로, 질병을 가지고 태어나면 아미노산을 분해하는 효소가 없기 때문에 모유는 물론 육류, 쌀 등 일반 식품도 먹을 수 없습니다. 잘못 먹으면 각종 질환과 뇌세포 손상,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20년 전만 해도 이 아이들은 한 통에 6만 원이 넘는 가격으로 해외 분유를 먹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선천성 대사 이상을 가진 아이가 300여 명 있는데, 김복용 회장은 단 한 명의 아이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분유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1년에 두 번 10일 동안 전체 생산 공장을 중단하고 1999년부터 이 분유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일반 분유의 성분과 공정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시설을 세척하고 생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요가 적은 만큼 이익을 얻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정부가 안 하면 우리가 한다'라는 김용복 회장의 고집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요즘은 중국에서 특수분유 수요가 있어서 중국에 수출도 하고 있습니다.
상하목장 설립
김복용 회장은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적이어서 장학재단을 만들어 꾸준히 장학금을 지급해 왔습니다. 2006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숙원사업인 '상하목장'을 전북 고창에 설립합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천연치즈를 만드는 곳이 없고 천연치즈를 수입해서 다른 첨가물과 섞어 만드는 가공치즈 공장만 있었습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천연치즈 소비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천연치즈를 위한 농장과 공장을 만들어 남는 우유를 소비하기로 계획했습니다. 그래서 매일유업은 고창군 상하면에 대형 목장을 만들고 유기농 우유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유기농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축사도 더 넓어야 하고,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초지를 갖춰야 합니다. 또한 인증받은 유기농 사료와 풀만 먹어야 하고,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으며, 전담 수의사의 관리를 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입니다. 그만큼 이곳에서 만들어진 우유와 치즈는 프리미엄 제품으로 유통되었고, 목장은 도시 사람들이 언제나 방문할 수 있는 체험형 농장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락토프리 우유
매일유업이 이렇게 좋은 제품을 생산하고, 경영을 잘하는 것과는 별개로 우유업계에는 위기가 닥쳤습니다. 바로 출산율 감소입니다. 분유와 우유 소비는 매년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또한 2026년부터 미국과 유럽산 유제품을 무관세로 수입할 예정입니다. 20년 전 FTA에 따라 유제품의 관세는 방어를 위해 처음에는 100%로 상정하고, 해마다 5%씩 관세를 낮췄습니다. 2026년에는 소멸시효가 0%로 종료되어 저렴한 외국산 멸균우유가 들어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때문에 우유업계는 우유산업에서 벗어나야 하는 역설적인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1997년 김용복 회장의 아들 김정환은 이러한 문제를 조기에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 'More than food, Beyond korea'라는 비전을 선포했습니다. 우유도 뛰어넘고, 음식도 뛰어넘어 세계로 나가겠다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매일유업은 우유를 마시면 유당의 분해와 흡수가 이루어지지 않아 배탈이 잘 나는 사람들을 위한 '락토프리 우유'를 선보였습니다. 유당불내증은 우리나라 성인의 84%, 전 세계 인구의 75%가 겪고 있을 만큼 흔한 증상입니다. 매일유업은 2006년 이들을 위한 특별한 우유인 '소화가 잘되는 우유'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인 락토프리 우유는 락타아제라는 유당 분해 효소를 사용하는데 우유 본연의 깔끔하고 고소한 맛이 사라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유업은 핀란드 발리오사의 기술을 독점으로 도입합니다. 필터로 먼저 걸러내고, 나머지는 효소로 가수분해하는 방법으로 우유 본연의 맛을 유지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락토프리 우유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업의 확장 - 폴바셋과 협업
폴 바셋(Paul Bassett)은 세계 바리스타 선수권 대회에서 최연소 우승 경력을 가진 호주 출신의 유명 바리스타입니다. 프리미엄 커피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인식한 매일유업은 폴 바셋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원두를 추출해 커피 사업을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매일유업이라는 브랜드로 커피 사업을 시작했지만, 폴 바셋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메뉴는 매일유업의 우유 아이스크림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성수동의 인기 빵 브랜드인 밀도를 인수했습니다. 밀도를 통해 락토 프리 빵과 같은 매일유업 제품을 사용한 신선한 빵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단백질 제품인 '셀렉스'와 보충식품인 '매일닥터' 등 건강기능식품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매일유업은 우유 외에도 식물성 대체 우유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비건과 건강 열풍으로 인해 다양한 식물성 음료가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는 미국 아몬드 회사 블루다이아몬드와 계약을 맺고 '아몬드 브리즈'를 출시했고, 2021년에는 중국 스타벅스에서 오트 음료에만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어메이징 오트'를 출시했습니다.
2013년 우유업계에 다소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남양유업이 대리점을 상대로 제품을 강매한 사건입니다. 남양유업의 매출은 계속 감소했고, 오너 일가는 사모펀드에 회사를 넘기고 경영에서 전면 철수했습니다. 한편 매일유업은 2024년 공정거래협약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동안 매일유업은 임직원 및 가족을 위한 장학사업과 자금 지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대리점과의 상생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우유 소비 감소로 당분간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우유업계에서 매일유업이 현명하고 지혜롭게 잘 이겨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