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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게임의 역사, 콘솔게임, 닌텐도 wii, 닌텐도 스위치

by ahnsmile2024 2025. 4. 17.

비디오게임이란 TV에 연결해서 즐기는 게임을 말합니다. 처음에 비디오 게임이 보급될 때가 집집마다 TV가 여러 대 생기던 시점과 비슷합니다. 이후 디지털 방송 시대가 되고, 대형 평면 TV가 등장하면서 다시 TV는 거실에 하나인 시대로 돌아옵니다. 이 시장을 노리고 닌텐도는 WII를 출시합니다. 그래픽이나 빵빵한 CPU의 게임이 아니라 지금 가족들이 어떤 환경에서 놀고 있는가를 먼저 고민하는 회사 닌텐도의 기업이야기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닌텐도
닌텐도

 

닌텐도 게임의 역사

닌텐도는 무려 1889년에 만들어진 회사입니다. 100년 전에도 게임을 만들었는데 바로 화투를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이 회사를 운영하는 야마우치 가문은 손주였던 야마우치 히로시를 젊은 나이에 3대 사장으로 앉힙니다. 당시에는 혁신적으로 플라스틱 화투도 만들고, 많은 돈을 벌어 회사를 상장시켰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신사업을 시도했다가 모두 실패합니다. 그래도 '유희'에 관련된 사업은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장난감 사업을 거쳐 1970년대 게임기 사업으로 확장합니다. 세계 최초의 휴대용 게임기인 Game&Watch를 만들었는데 큰 성공을 거둡니다. 일본에서 잘 되자 미국 시장에도 진출합니다. 미국 시장 진출 직후에는 매출이 부진했는데 이때 '미야모토 시게루'라는 직원이 나서게 됩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캐릭터를 만들어 본 적도 없는 미야모트는 킹콩에게서 공주를 구하는 스토리텔링을 게임에 부여합니다. 그렇게 출시한 '동키콩' 게임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합니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이후에도 닌텐도 역사의 중요한 IP들을 많이 개발합니다. 닌텐도는 오락실 게임이었던 동키콩에 이어 가정용 콘솔 게임기 패미컴을 출시합니다. 그러면서 동키콩에 등장했던 캐릭터를 활용한 새로운 게임을 출시했는데 바로 슈퍼마리오였습니다. 당시 미국 게임 시장의 1위 사업자였던 아타리가 ET라이선스로 게임을 만들었는데 품질이 너무 좋지 않아서 폭망 했습니다. 하지만 동기풍과 마리오 덕분에 미국 전역에서 닌텐도 붐을 일으키면서 1위 사업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많은 서드파티 개발자들이 닌텐도 게임을 개발했고 오랫동안 콘솔 시장은 닌텐도가 지배했습니다. 게임팩이 룸카트리지 방식인데 특허가 닌텐도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게임 사업자들도 닌텐도에 라이선스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콘솔게임 등장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이를 바꾸고 싶어 했던 SONY는 CD용 콘솔인 플레이스테이션을 출시했습니다. 처음에 1등이었던 닌텐도는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1990년대 중반 게임 시장은 2D에서 3D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비싸고 고성능의 콘솔 게임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그동안 독점 플랫폼인 닌텐도에게 불만을 품었던 서드파티 개발자들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돌아섭니다. 파이널 판타지를 만들었던 스퀘어도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만 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때 플레이스테이션은 1억 대, 2000년대에 나온 플레이스테이션 2는 1억 5천만 대가 판매됩니다. 그 후로 한동안 닌텐도는 콘솔시장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닌텐도의 CEO였던 야마우치 히로시가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이때 닌텐도를 구원할 인물 이와타 사토루가 등장합니다. 이와타는 게임 개발자였습니다. 학생 때는 프로그래밍에 빠져있었고, 대학 졸업 후 HAL 연구소에 입사하여 게임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이 회사는 닌텐도의 패미컴을 위한 게임 개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와타는 '핀볼, '골프' 같은 패미컴용 게임을 개발합니다. 원래 HAL 연구소는 5명으로 시작했는데 꾸준히 성장했고 10년 만에  됐고 직원이 90명이 되었습니다. 이와타도 이런 공을 인정받아서 어린 나이에 개발 부장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HAL 연구소는 경영 위기에 빠져서 회사 부채가 15억 엔이 됩니다. 이와타는 더 좋은 회사로 갈 수도 있었지만, 자기가 회사를 잘 살려야겠다는 각오로 HAL 연구소의 사장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후 6년 만에 회사 부채를 모두 갚고, '별의 커비'와 같이 닌텐도 역사에 남을 게임을 많이 개발합니다. 이러한 공을 높이 사서 외부인이었던 이와타를 닌텐도의 CEO로 앉힌 것입니다. 이때가 이와타의 나이 42세였습니다.

 

닌텐도 wii 출시

이와타가 CEO가 되기 전부터 야마우치는 이와타에게 '닌텐도는 싸우면 진다. 그러니 다른 회사와 싸워서는 세워서는 안 된다.'라고 조언했습니다. 레드오션에서 개성 없이 승부하면 가격경쟁만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또 어제의 닌텐도와 다른 것을 만들라는 주문을 했습니다. 이와타는 실제로 게임을 오래 개발한 전문가들 뽑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결과 이와타가 사장이 되고 닌텐도에서는 두 가지 혁신이 일어납니다. 첫 번째는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DS입니다. 과거에는 닌텐도에 게임보이의 영광이 있었지만 지금까지와 똑같지 않기 위해서 닌텐도는 두 개의 화면과 터치스크린을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들어간 게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두뇌 단련 게임, 강아지 키우기 같은 쉽고 재미있는 게임이었고,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두 번째로 나타난 제품은 닌텐도의 새로운 콘솔 wii였습니다. 리모컨 같은 컨트롤러를 이용해서 동작을 인식하는 이 콘솔도 대박이 납니다. wii sports는 8,290만 장이 판매되었고, 역사상 단일 타이플로 최고로 많이 팔린 게임이 되었습니다. 이런 결과로 2009년 닌텐도의 연매출은 19조 원, 영업이익은 5조 5천억 원을 달성했고, 주가는 치솟았습니다.

 

닌텐도 스위치

이와타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닌텐도의 실적은 2009년을 정점으로 2017년까지 계속 떨어졌습니다.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7년 닌텐도 스위치가 나오면서 닌텐도는 다시 콘솔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휴대용인 데다가 테이블 위에서 거치형으로 즐길 수도 있고,  TV에 연결해서 큰 화면으로 즐길 수도 있습니다. 조이콘을 분리하여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도 있습니다. 닌텐도 스위치는 2021년 3월 31일까지 8,459만 대를 판매했습니다. 물론 플레이스테이션 4도 비슷하게 판매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들 외에도 캐주얼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여성들도 많이 즐기고 있다는 점이 조금 다릅니다. 무엇보다 강력한 게임 타이틀들이 있습니다. 가장 많이 팔린 소프트는 마리오카트 8 디럭스가 3,539만 장을 판매했습니다. 슈퍼마리오는 닌텐도 스위치에  가장 많이 팔린 10개의 게임 중 4개의 게임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시대를 초월하는 IP가 되었습니다. 또 닌텐도의 강력한 IP 포켓몬스터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 때는 닌텐도 수요가 폭발과 함께 사랑받은 게임은 단연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었습니다. 원작자는 순수한 마음을 구현할 힐링 게임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안에서 누가 먼저 빚을 갚을 것이냐'라는 그 자본주의의 게임으로 사랑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젤다의 전설'도 닌텐도의 강력한 IP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닌텐도는 우리가 아닌 미국의 플랫폼 기업들과는 좀 다릅니다. 모바일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모바일이 아닌 콘솔로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계속 만들겠다는 고집을 유지합니다. 또 다른 게임 회사들과는 달리 라이트 유저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도 매우 다릅니다. 닌텐도에 따르면 굳이 라이트 유저와 코어 유저를 구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떤 코어 유저도 처음에는 라이트 게임 유저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내놓는다는 점에서 확실히 다른 행보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폐쇄적인 플랫폼 정책과 강력한 IP, 그리고 이를 통해 충성 고객들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모동숲 안에 바이든의 선거 사무소가 세워지기도 하고 또 안나수이, 발렌티노 같은 브랜드와 콜라보도 진행했습니다. 혹시 닌텐도가 게임 콘솔 이상의 세계를 구축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