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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랑받는 스팸, 전투식량, 스팸메일의 유래

by ahnsmile2024 2025. 4. 4.

명절이 되면 다양한 종류의 선물 세트 중 잘 팔리는 제품이 있습니다. 바로 통조림입니다. 사실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는 스팸이 싸구려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2014년 뉴욕타임스는 한국에서 스팸의 위상이 남다르다며, 특히 명절에는 고급 선물세트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1면에 소개하면서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왜 한국에서는 스팸이 사랑받게 되었는지 스팸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스팸로고
스팸

 

통조림 햄을 개발한 호멜푸드

전 세계에서 통조림 햄을 처음 개발한 회사 바로 호멜푸드입니다. 호멜푸드는 시카고 도축장에서 일하던 조지 호멜이 가공육 시장이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해 1891년 퇴사를 하고 직접 차린 회사입니다. 그는 깐깐한 성격 때문에 신선한 돼지고기를 엄격하게 가공해서 회사를 성장시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후 아들 제이 호멜이 아버지 공장에서 열심히 일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제이는 미네소타에서 가장 처음으로 자원입대를 했습니다. 이때 제이는 프랑스에서 군수 물자를 보급하는 병참 장교로 복무하면서 전투 식량에 대한 지식을 쌓게 됩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제이는 1927년 아버지가 은퇴하면서 호멜푸드의 대표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젊은이답게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동안 호멜푸드가 판매하던 가공육이나 햄은 구매한 후 다시 조리를 해서 먹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이는 소비자가 구매해서 바로 먹는 식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오랫동안 연구 개발을 했지만, 딱히 성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유럽 여행 중 독일의 한 마을에서 작은 육가공업체를 운영하던 폴 존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햄을 캔 속에 포장하는 방법을 발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제이는 존을 설득해서 미국으로 데려오고 1927년 세계 최초의 통조림 햄인 호멜 플레이버 실드 햄 (Hormel Flavor-Sealed Ham)을 출시했습니다. 직역하면 맛을 봉인한 햄입니다. 이때 만든 햄은 고기를 통째로 캔에 넣은 것에 가까웠습니다.

 

완벽한 전투식량 스팸의 개발

통조림으로 성공을 거두자 제인은 버려지는 고기를 활용할 방안을 또 고민했습니다. 특히 돼지의 어깨살은 뼈를 발라내고 나면 덩어리가 작아서 상품성이 없었습니다. 제이는 어깨살에 뒷다리를 섞고 갈아서 향료와 방부제를 첨가했습니다. 여기에 호멜 스파이스 햄(Hormel Spiced Ham)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제품이 잘 팔리지 않자 100달러를 걸고 상품명 콘테스트를 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스파이스 햄의 맨 앞 두 글자 SP, 그리고 맨 뒤에 두 글자 AM을 따서 이름을 냈고, 바로 스팸(SPAM)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스팸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건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진 후 부터 입니다. 미국은 연합군의 무기, 탄약, 식량 등 물자를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신선한 고기를 먹기 어려운 군인들을 위해 보급된 게 바로 스팸입니다. 스팸은 조리할 필요도 없고, 열량도 아주 높은 데다가 염분도 보충해 주기 때문에 완벽한 전투식량이었습니다. 스팸은 통에 담긴 채 밀폐가 된 다음 120도가 넘는 고온, 고압의 수증기로 열을 가해서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만들면 수분은 손실되지 않으면서 균이나 미생물이 모두 박멸됩니다. 그래서 다시 익히지 않고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식품이라 군인들이 매우 좋아했습니다. 호멜푸드는 일주일에 1500만 캔씩 수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보낸 스팸이 1억 3300만 개가 넘었습니다. 어딜 가나 스팸이 발에 채일정도로 흔해서 당시 영국의 캠프는 스팸랜드 미국의 캠프는 스팸 밀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스팸메일의 유래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영국에서는 스팸이 너무 많아서 민간에 보급, 배급했습니다. 그래서 훗날 영국 bbc의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코너에서 극 중 종업원이 손님에게 샌드위치 메뉴를 알려주는데 모든 메뉴에 스팸이 포함됩니다. 계란 소시지 스팸, 베이컨 스팸, 소시지 스팸, 스팸 계란 등 스팸이 포함된 메뉴를 쭉 읽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손님들도 스팸송을 합창까지 합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것을 보게 되면 스팸이라는 말을 붙이게 됐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있으니 바로 '스팸메일'입니다. 메일함을 가득 채우는 광고성 메일을 부르는 말인 '스팸메일'이 스팸 통조림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유럽에서는 스팸이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였습니다. 하지만 스팸은 미군을 따라 여러 나라에 진출했고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사랑받은 곳이 하와이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하와이에서는 일본에서 건너온 민간인들이 생선 초밥을 만들어서 팔았습니다. 그런데 한때 미국 정부가 하와이의 어업을 금지하자 초밥에 생선 대신 스팸을 얹은 무스비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와이에 가면 맥도널드에 스팸이 들어가는 메뉴가 있고 한국의 김치만큼이나 스팸을 많이 먹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군을 따라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당시 PX에서만 공식적으로 팔았기 때문에 영국처럼 흔히 볼 수는 없었습니다. 전쟁 때문에 먹거리가 부족해지자 미군의 보급품을 몰래 빼내거나 먹다 남은 스팸, 소시지, 베이컨으로 만든 부대찌개가 등장하면서 스팸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한국만의 방식으로 생산한 스팸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신선한 고기를 많이 먹었었고, 전쟁 후 스팸이 너무 흔해지면서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그전까지 고기를 많이 소비하던 나라도 아니었고, 수입품에 대한 조치 때문에 스팸은 남대문시장에서 암암리에 구매하던 귀한 식자재였습니다. 하지만 한국도 1970년대부터는 양돈 산업이 시작되면서 햄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상품이 분홍 소세지입니다. 밀가루를 많이 섞은 저렴한 제품을 만들다가 1980년대부터는 스팸 같은 양질의 햄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출시한 건 1983년 롯데가 출시한 로스팜과 제일제당에서 만든 런천미트였습니다. 하지만 이 햄들은 가격이 비싸서 당시에는 수요가 많지 않았습니다. 식품업계는 적자를 보면서도 언젠가 햄이 인기가 많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버텼습니다. 그런데 1987년 통조림 햄의 수입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러자 CJ 제일제당이 1987년 호멜푸드와의 기술 제휴를 통해서 스팸을 국내생산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유통하고 있습니다. 이때 미국의 스팸 클래식과 맛을 동일하게 유지하려고 최대한 노력했는데, 제작 방식은 조금 달랐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산 스팸은 4mm로 자르는데 한국은 3mm로 잘랐습니다. 처음에는 미국과 동일하게 4m m 로 잘랐는데 힘줄이나 연골 등을 느끼는 소비자들의 클레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까다로운 한국인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1mm를 줄이려고 재료의 배합비, 온도, 순서 등 전 공정을 바꿨습니다. 또 미국 스팸에는 전분이 들어가는데 한국인들은 밀가루나 전분이 들어가면 저렴한 어묵이나 소시지처럼 질이 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분을 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분이 수분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전분을 빼기 위해서는 다른 비법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제일제당은 연구 끝에 저온 숙성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조리한 뒤 하루 정도 숙성해서 캔에 담고 밀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자 촉촉하고도 탄력 있는 식품을 만들 수 있었는데 한국만의 새로운 방식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스팸은 정식 출시되고 첫 해에만 500톤이 판매되면서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특히 외환 위기 이후에는 가성비 선물이 인기를 끌면서 스팸이 명절에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호멜 푸드는 지금도 미국의 대표적인 식품 기업 중 하나입니다. 칠면조 가공육을 만들고, 땅콩버터 브랜드 스키피를 유통하기도 합니다. 작년에는 스팸 코리안 비비큐 맛을 출시하고 월마트에 유통을 하고 있습니다. 간장, 마늘, 생강 그리고 고추장까지 곁들여서 풍미가 강하다고 합니다. 한국의 맛을 미국으로 역수출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호멜푸드와 CJ 제일제당 등 식품업계가 건강하고 맛있는 식품을 고민해 주길 바랍니다.